Ⅱ. 기적 충동의 왜곡

102 너는 기적 충동 위에 두터운 덮개를 만들어서 그것이 의식에 도달하기 어렵게 만드는 무의식적인 왜곡에 열중하고 있다. 너의 모든 대인 관계의 본질은, 그 관계가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것에 의해 제한되거나 정의된다. 관계 맺기는 어떤 결과를 얻는 방법이다. 방어기제의 위험성은, 그릇된 지각물을 경직되게 고착화하는 경향에 놓여있다. 거꾸로 된 사고방식에서 비롯되는 모든 행동은 그야말로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자들의 행위적 표현이다. 경직된 지향성은, 심지어 그것이 위아래가 뒤집혀 있는 경우에도, 굉장히 신뢰할 만하다. 사실 그것이 더욱 일관되게 위아래가 뒤집혀 있을수록 더욱 신뢰할 만하다.

103 그렇지만 궁극적인 목표는 여전히 타당성이며, 신뢰성은 이 목적에 기여할 수 있을 뿐이다. 적대감, 승리, 복수, 자기 비하, 사랑의 결핍에 대한 온갖 표현은 종종 그것들을 동반하는 판타지에서 아주 분명하게 보인다. 그러나 이런 판타지들이 매우 잦다거나 매우 신뢰할 만하게 일어난다고 해서, 그것이 타당성을 함축한다고 상상하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타당성은 신뢰성을 함축하지만, 그 역관계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억하라. 전적으로 신뢰할 만한 경우에도 완전히 틀릴 수 있다. 신뢰할 만한 도구는 과연 무언가를 측정하기는 하지만,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밝혀내지 않는 한 무슨 쓸모가 있겠는가? 따라서 이 수업은 타당성에 집중하여, 그에 따라 신뢰성이 자연스럽게 제자리를 잡도록 하겠다.

104 기적 충동을 육체적 충동과 혼동하는 것은 지각적 왜곡의 주된 근원이다. 그런 혼동은 이 세상의 도구로 행복을 구하는 모든 이의 지각 밑에 깔린 기본적인 수준 혼동을 바로잡기보다는, 유발하기 때문이다. 부적절한 육체적 충동(혹은 잘못된 방향으로 보내진 기적 충동)은 표현되면 알아차릴 수 있는 죄의식을 낳고, 부정되면 우울증을 낳는다. 모든 진정한 기쁨은 하느님의 Will을 행하는 데서 나온다. 하느님의 을 행하지 않는 것은 자신에 대한 부정이기 때문이다. 잘못의 부정은 투사를 낳는다. 잘못의 교정은 해방을 가져다준다. “우리를 유혹으로 인도하지 마소서.”라는 말은 “우리가 외적인 어떤 것을 가지고 하느님이나 우리의 형제들과 평화롭게 관계 맺을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이지 말게 하소서.”를 의미한다.

105 하느님의 아이야, 너는 선한 것과 아름다운 것과 거룩한 것을 창조하기 위해 창조되었다. 이를 잊지 말라. 진정한 비전이 아직은 너무 희미하기에, 하느님의 사랑은 잠시 한 몸을 통해 다른 몸에게 표현되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진정한 비전을 볼 수 있도록 자신의 지각을 확대함으로써, 자신의 몸을 가장 잘 사용할 수 있다. 이러한 비전은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몸의 궁극적인 목적은 몸 자체를 불필요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렇게 하도록 배우는 것이야말로, 몸이 창조된 유일하게 진정한 이유다.

106 모든 판타지는 왜곡된 사고방식이다. 판타지는 항상 지각을 비틀어서 비실재로 만드는 것을 수반하기 때문이다. 판타지는 비전을 보잘것없는 형식으로 격하한 것이다. 비전과 계시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판타지와 투사는 더욱 밀접한 관련이 있다. 둘 다 거짓된 내적 욕구에 따라 외적 현실external reality을 통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실재reality를 어떤 식으로든 비튼다면, 너는 파괴적으로 지각하고 있는 것이다. 실재는 강탈을 통해 상실되었으며, 이것은 이어서 폭정을 낳았다. 나는 너희가 이제 속죄 계획에서 전에 맡은 역할로 돌아왔다고 말했지만, 너희는 여전히 더 큰 회복을 위해 자신을 바치겠다고 자유로이 선택해야 한다. 단 한 명의 노예라도 남아서 땅 위를 걷는 한, 너희의 해방은 완전하지 않다. 온아들의 완전한 회복이야말로 기적심을 가진 자의 유일하게 진정한 목표다.

107 어떤 판타지도 참이 아니다. 판타지는 정의상 지각을 왜곡한 것이다. 판타지는 거짓된 연상물을 만들어서 그로부터 쾌락을 얻는 수단이다. 사람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가 정녕 창조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비록 거짓된 연상물들을 지각할 수 있을지라도, 자기 자신을 제외한 그 누구도 그것들이 실제라고 생각하도록 만들 수는 없다. 사람은 자신이 창조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가 만약 기적을 창조한다면, 기적이 존재한다는 그의 믿음도 마찬가지로 강력할 것이다. 이어서 그의 강력한 확신이 기적을 받는 자의 믿음을 떠받쳐 줄 것이다. 온전히 만족시켜 주는 실재의 본성이 두 사람 모두에게 분명해짐에 따라, 판타지는 전혀 필요 없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