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서문
1이 절은 앎knowledge의 근본적인 오용을 다룬다. 그것은 성서에서 “타락”, 즉 분리의 원인이라고 언급된 바 있다. 너에게 사전에서 찾아오라고 부탁한 몇 가지 정의들이 여기서 도움이 될 것이다. 그것들은 사전에 맨 처음 나오는 정의들이 아니므로, 조금은 낯설 것이다. 하지만 그것들이 사전에 나온다는 사실로 보아 믿을 만할 것이다.
2투사하다 (동사): 전방으로, 혹은 바깥으로 확장하기.
투사 (명사): 마음 안에 있는 계획.
세상: 자연의 거대한 구역.
3우리는 나중에 투사를 정신 건강은 물론 정신 질환과도 관련된 것으로 언급할 것이다. 우리는 이미 사람은 빈껍데기를 창조할 수는 있지만, 전혀 아무것도 창조하지 않을 수는 없음을 살펴보았다. 이러한 공허는 투사의 오용을 위한 스크린을 제공한다.
4성서에서 문자 그대로 동산으로 묘사된 에덴동산은 전혀 실제의 동산이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필요한 것이 전혀 없는 정신 상태였다. 심지어 문자 그대로 보더라도, 분리 이전의 상태는 본질적으로 사람에게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지식의 나무tree of knowledge” 또한 지나치게 문자 그대로의 표현이다. 이런 개념들을 먼저 명확히 해두어야 앞으로 분리, 즉 “두려움 속으로의 우회”가 진정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5위에서 정의된 대로 “투사하기”는 하느님의 근본적인 속성이며, 하느님은 그러한 속성을 당신의 아들에게도 주셨다. 창조 시에, 하느님은 당신의 창조 능력을 당신 자신으로부터 당신이 창조하신 영혼들에게 투사하셨고, 또한 창조하려는 똑같은 사랑의 뜻을 그들에게 불어넣으셨다. 영혼은 충만하게 창조되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하게 창조되었다. 영혼 안에는 공허가 전혀 없다. 영혼은 자신의 창조주를 닮았으므로, 창조적이다. 하느님의 아이들은 그 누구도 이러한 능력을 잃을 수 없다. 그것은 그들의 정체 안에 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은 그것을 부적절하게 사용할 수는 있다. 투사가 부적절하게 사용될 때마다, 그것은 항상 어떤 공허나 결핍이 존재하며, 사람에게는 그곳에 진리 대신에 자신의 아이디어를 놓아둘 능력이 있음을 함축한다.
6 이것이 필연적으로 무엇을 함의하는지 주의 깊게 생각해 본다면, 다음의 내용이 아주 명백해질 것이다:
7 첫째, 하느님이 창조하신 것이 사람의 마음에 의해 바뀔 수 있다는 가정이 은연중에 포함되어 있다.
8 둘째, 완전한 것이 불완전하거나 부족하게 될 수 있다는 개념이 받아들여진다.
9 셋째, 사람이 자기 자신을 포함하여 하느님의 창조물들을 왜곡할 수 있다는 믿음이 받아들여진다.
10 넷째, 사람이 자기 자신을 창조할 수 있으므로, 자신을 어떤 식으로 창조할지도 그에게 달려있다는 아이디어가 함축되어 있다.
11 이렇게 서로 관련된 왜곡들은 분리 시에 실제로 무엇이 일어났는지를 보여주는 그림이다. 그것들 가운데 아무것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은 “자연의 거대한 구역”으로서, 즉 하느님이 당신 자신을 바깥으로 투사하신 것으로서 만들어졌다. 그러하기에,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은 하느님을 닮았다. 하느님이 사용하시는 투사는 자녀들이 아버지께 물려받은 내면의 광휘와 아주 비슷하다. “바깥으로 투사하다”라는 용어는 필연적으로 투사의 진정한 근원이 내면에 있음을 함축한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아버지는 물론 아들에게도 해당되는 사실이다.
12 세상이라는 용어에 원래 내포된 의미를 고려할 때, 세상은 하느님이 사람을 온당하게 창조하시는 것은 물론 사람이 바른 마음 상태에서 온당하게 창조하는 것도 포함했다. 후자의 경우, 하느님이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부여하시는 것을 필요로 했다. 모든 사랑스러운 창조는 자유로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 진술에서 어떤 수준이 개입되어 있다거나, 모든 측면들이 같은 순위에 있는 하나의 연속적인 창조의 선 외의 어떤 것이 있음을 함축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13 “뱀의 거짓말”이 도입되었을 때, 그것은 참이 아니므로 구체적으로 “거짓말”이라고 불렸다. 사람이 귀 기울였을 때 그가 들은 것은 온통 허위였다. 사람이 그러기로 선택하지 않는 한, 참이 아닌 것을 계속해서 믿을 필요는 없다. 사람의 모든 그릇된 창조물들은 단지 시각적으로 그릇되게 지각된 것이므로, 문자 그대로 “눈 깜박할” 사이에 사라질 수 있다. 사람의 영안은 잠들 수 있지만, 잠든 눈은 여전히 볼 수 있다. 꿈속에서 보이는 것은 아주 실재적으로 보인다. 성서는 “아담에게 깊은 잠이 몰려왔다.”라고 언급하지만, 그가 깨어났다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14 사람이 보는 대로의 세상의 역사에서 모든 이가 다시 깨어나는 진정한 재탄생은 아직 기록되지 않았다. 그가 그릇되게 창조하려는 마음으로 투사하는 한, 이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은 여전히 하느님이 당신 자신의 영을 사람에게 투사하신 것처럼 투사할 수 있다. 실제로는 이런 투사가 그의 유일한 선택이다. 사람의 자유 의지는 완벽한 것을 창조하는 기쁨을 누리라고 주어졌기 때문이다.
15 궁극적으로 모든 두려움은 사람에게 하느님의 권능을 찬탈할 능력이 있다는 근본적인 오지각으로 환원될 수 있다. 그러나 사람은 하느님의 권능을 찬탈할 수 없으며, 그렇게 할 수도 없었다는 점은 강조될 수만 있을 뿐이다. 바로 이런 사실에, 사람이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너무도 정당하다는 근거가 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람이 속죄를 받아들임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럼으로써 그는 자신이 실제로 잘못을 범한 적이 없음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 아담에게 “깊은 잠”이 몰려왔을 때 그는 악몽을 경험할 조건에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무서운 꿈을 꾸고 있는데 갑자기 불이 켜지면, 처음에는 그 빛 자체도 꿈의 일부로 해석하여 두려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깨어나면 그 빛을 꿈에서 해방해 주는 것으로 바르게 지각하게 되며, 더 이상 꿈에 실재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16 이런 해방은 단지 속이려는 거짓말에 불과한 “지식knowledge”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점은 아주 명백하다. 감추지 않고 환히 밝혀 주는 앎knowledge이야말로, 너를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네가 정녕 자유로움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앎이다. 네가 어떤 거짓말을 믿든 기적은 관심이 없다. 기적은 그중 어떤 거짓말도 똑같이 쉽게 치유할 수 있다. 기적은 그릇되게 지각된 것들을 전혀 구분하지 않는다. 기적의 유일한 관심사는 한편에 있는 진리와 다른 편에 있는 온갖 잘못을 구분하는 것이다. 어떤 기적은 다른 기적보다 규모가 더 커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기적들에는 난이도가 없다는 이 수업의 첫 번째 요점을 기억하라.
17 실제로는, 너는 사랑의 결핍이 드러난 그 어떤 표현에도 전혀 영향받지 않는다. 그것은 너와 다른 사람들이 동시에 표현하는 것이거나, 네가 다른 사람들에게, 혹은 다른 사람들이 너에게 표현하는 것일 수 있다. 평화는 네 안에 있는 속성이다. 너는 평화를 바깥에서 찾을 수 없다. 모든 정신 질환은 일종의 외적인 추구다. 정신 건강은 곧 내면의 평화다. 내면의 평화는 네가 외부에서 오는 사랑의 결핍에 흔들리지 않고, 다른 이들 안에 있는 사랑의 결핍에서 비롯되는 외적인 상황을 너 자신의 기적으로 교정할 수 있게 해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