Ⅴ. 사랑의 결핍에 대한 교정법
82 교정의 첫 단계는, 먼저 이것이 두려움의 표현임을 아는 것이다. 다음으로 네가 어떻게든 사랑하지 않기로 선택했을 것이며, 그렇지 않다면 행위와 뜻의 갈등에서 일어나는 두려움은 일어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라. 그러면 전체 과정은 단지 속죄를 유일한 치료법으로 받아들이는 더 큰 과정 안에 있는 일련의 실용적인 단계들에 불과하게 된다. 이 단계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83 1. 먼저, 이것은 두려움임을 알라.
84 2. 두려움은 사랑의 결핍에서 일어난다.
85 3. 사랑의 결핍에 대한 유일한 치료법은 완벽한 사랑이다.
86 4. 완벽한 사랑은 곧 속죄다.
87 우리는 기적, 즉 속죄의 표현은 언제나 가치 있는 자가 가치 있는 자에게 보내는 진정한 존경의 표시임을 강조했다. 이 가치는 속죄에 의해 재확립된다. 따라서 네가 두려워하고 있다면, 너 자신을 속죄가 필요한 위치에 놓은 것이 분명하다. 너는 사랑 없이 뜻을 내서 무언가 사랑스럽지 않은 것을 행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이런 상황을 위해 속죄가 제공되었다. 치료법에 대한 필요가 치료법이 창조되도록 고무하였다. 치료법의 필요성만 인식하는 한, 너는 계속 두려움에 빠져있을 것이다. 하지만 네가 그 필요를 치료한다면, 그 순간 두려움도 폐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치유가 일어나는 방법이다.
88 모든 이가 두려움을 경험하지만, 그 누구도 두려움을 즐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두려움이 왜 일어나는지 깨닫기 위해서는, 바른 생각을 아주 조금만 해보면 될 것이다. 마음의 진정한 힘을 이해하는 사람은 아주 적으며, 그것을 항상 완전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스스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면, 몇 가지를 충분히 알아차리고 있어야 한다. 마음은 아주 강력한 창조자며, 자신의 창조적인 힘을 결코 잃지 않는다. 마음은 절대로 자지 않는다. 매 순간 마음은 창조하고 있으며, 항상 네가 뜻하는 대로 창조한다. 너의 일상적인 표현 중에 많은 것이 이것을 반영한다. 예를 들어 “그건 생각도 하지 마.”라고 말할 때, 네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면 그것은 너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을 것임을 넌지시 내비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과연 맞는 말이다.
89 한편, 다른 많은 표현들은 생각의 힘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잘 보여준다. 예를 들어, 너는 어떤 생각이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건 헛된 생각일 뿐이야.”라고 말한다. 또한, 어떤 행동에 대해 “생각이 없다.”라고 말하면서, 만약 그 사람이 생각이 있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는 않았을 것임을 넌지시 내비친다. 반면에 “크게 생각하라.”와 같은 표현은 생각의 힘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는 하지만, 여전히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 말을 할 때 너는 네가 성장할 것이라고 정말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따라서 그런 기대를 하지 않는다.
90 생각과 믿음이 합쳐져 문자 그대로 산을 움직일 수 있는 폭발적인 힘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기는 어렵다. 처음에는 너 자신에게 이런 힘이 있다고 믿는 것은 그저 오만으로 보이지만, 이것은 네가 그런 힘을 믿지 않는 진짜 이유가 아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진정한 통제권을 행사할 수 없다고 믿기를 선호하는데,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문자 그대로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자신의 죽음에 대한 동경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대할 때, 많은 심리치료자들은 그런 동경이 가진 힘을 깎아내림으로써 도와주려고 한다. 그들은 심지어 실재적인 결과는 전혀 낳지 않으면서도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생각할 수 있다고 환자를 설득하여 “자유롭게” 해주려고까지 한다.
91 이것은 진정으로 바른 마음 상태에 있는 자만이 벗어날 수 있는 어려운 딜레마다. 죽음에 대한 동경은 육체적인 의미에서는 죽이지 않지만, 영적인 자각을 죽인다. 모든 파괴적인 생각은 위험하다. 죽음에 대한 동경이 있으면, 그 생각에 근거해 행동하거나 그와 반대로 행동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따라서 그는 오로지 살인과 두려움 사이에서만 선택한다. 다른 가능성은, 자신이 가진 생각의 힘을 깎아내리는 것이다. 이것은 정신 분석에서 늘 하는 접근법이다. 이것은 죄의식을 완화해 주지만, 그 대신 생각을 무력화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만약 너의 생각이 아무런 결과도 낳지 않는다고 믿는다면, 너는 그것을 지나치게 두려워하지는 않겠지만, 그것을 존중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92 세상은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두려워하여 자신의 가치를 어떻게 깎아내렸는지 보여주는 사례들로 가득하다. 몇몇 형식의 광기에서는 생각이 미화되기도 하지만, 그 이유는 단지 저변의 가치 절하가 너무 효과적이어서 더 이상 용인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헛된” 생각이란 없다. 모든 생각은 어떤 수준에서든 형상화된다. 사람이 초감각적 지각을 두려워하고 그렇게 자주 반발하는 이유는, 생각이 자신을 해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 자신의 생각이 그를 취약하게 만들어버렸다.
93 너는 두려움에 대해 끊임없이 불평하면서도 여전히 고집스럽게 두려움을 창조한다. 일전에, 너를 두려움에서 해방해 달라고 나에게 부탁하지 말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두려움이 존재하지 않음을 알지만, 너는 모르기 때문이다. 내가 단지 너의 생각과 그 결과 사이에 끼어들기만 해도, 이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근본적인 법칙인 원인과 결과의 기본 법칙을 훼손하는 것이 된다. 내가 만약 네 생각의 힘을 깎아내린다면, 도저히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이 수업의 목적과 정면으로 대립할 것이다. 차라리 네가 하루의 적은 부분을 제외하고는 너의 생각을 주의 깊게 보호하지 않으며, 그때조차 그리 일관되지 않음을 일깨워 주는 편이 훨씬 더 도움이 된다. 현시점에서 네가 그렇게 할 수 있으려면 기적이 필요하다고 느낄 수도 있는데, 그것은 아주 맞는 말이다.
94 사람은 아직 기적적으로 생각하기에 익숙하지 않지만, 그런 식으로 생각하도록 훈련받을 수 있다. 모든 기적일꾼은 그런 종류의 훈련이 필요하다. 나는 그들이 그들의 마음을 보호되지 않은 채로 내버려두게 할 수 없다. 그러면 그들은 나를 도울 수 없을 것이다. 기적을 행하려면, 생각의 힘에 대한 완전한 자각과 그릇된 창조에 대한 완벽한 회피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기적일꾼의 마음 자체를 바로잡기 위해 기적이 필요할 것인데, 이는 기적이 있는 이유인 시간 붕괴를 촉진하기 힘든 순환 과정이다. 그것은 또한 모든 기적일꾼이 마땅히 가져야 할, 진정한 원인과 결과에 대한 건강한 존경심을 이끌어 내지도 않을 것이다.
95 기적도 두려움도 모두 생각에서 나오며, 만약 너에게 하나를 선택할 자유가 없다면 다른 하나를 선택할 자유도 없을 것이다. 기적을 선택함으로써 너는 이미 두려움을 거부한 것이다. 너는 그동안 하느님, 나, 너 자신, 그리고 사실상 한 번쯤은 알았던 모든 이를 두려워했다. 이것은 네가 우리 모두를 그릇되게 지각하거나 그릇되게 창조해 놓고는, 네가 만든 것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네가 만약 너 자신의 생각을 두려워하지 않았다면,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취약한 자들은 본질적으로 그릇된 창조자들이다. 그들은 창조를 그릇되게 지각하기 때문이다.
96 너는 너의 마음을 의식적으로 관찰하지 않을 때 너의 마음이 무심한 상태unmindful에 있다고 고집스레 믿는다. 하지만 이제 무의식, 혹은 “관찰되지 않은” 마음이라는 세상 전체를 고찰해 볼 때다. 이것은 두려움의 근원이므로, 너를 충분히 두렵게 만들 수 있다. 관찰되지 않은 마음은 기적 수준 위에 놓여있는 무의식의 내용 전체에 책임이 있다. 모든 정신 분석 이론가들이 이와 관련해서 어느 정도 기여했지만, 전체를 제대로 다 본 자는 아무도 없다. 그들은 모두 무의식적인 내용을 드러내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공통된 잘못을 범했다. 이런 식으로는 무의식적인 활동을 이해할 수 없다. “내용”은 오로지 특정 개인 자신이 기여하는 보다 피상적인 무의식 수준들에만 적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이 수준으로 두려움을 쉽사리 들여올 수 있으며, 대개 그렇게 한다.
97 사람은 그릇되게 창조할 때 고통 속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인과원리the cause and effect principle는 일시적으로 강력한 촉진제가 된다. 실제로 “원인Cause”은 본래 하느님께 속한 용어며, 역시 대문자로 써야 하는 “결과Effect”는 하느님의 아들이다. 이것은 사람이 자신의 그릇된 창조물들 속으로 들여온 것과는 완전히 다른, 한 쌍의 원인과 결과 관계를 수반한다. 진정한 기본적인 갈등에서 근본적인 대립쌍은 창조와 그릇된 창조다. 모든 사랑이 창조 안에 내재하듯, 모든 두려움은 그릇된 창조 안에 내포되어 있다. 이런 차이로 인해, 기본 갈등은 실로 사랑과 두려움 사이의 갈등이다.
98 이미 말했듯이, 사람이 두려움을 통제할 수 없다고 믿는 이유는 사람 자신이 두려움을 창조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존재한다는 그의 믿음은 정의상 두려움을 그의 통제 밖에 있는 것으로 만드는 듯하다. 하지만 기본 갈등을 두려움의 정복mastery of fear이라는 개념을 통해 해결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무의미하다. 사실 이런 시도는 두려움이 정복될 필요가 있다는 단순한 가정으로 두려움의 힘을 옹호한다. 근본적인 해결은 전적으로 사랑의 통달mastery of love에 달려있다. 그동안은 갈등의 느낌이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기묘하게 비논리적인 입장에 놓아두었기 때문이다. 그는 존재하지 않는 것의 힘을 믿는다.
99 “무”와 “모든 것”은 공존할 수 없는 두 개념이다. 둘 중 하나를 얼마나 믿든, 다른 하나는 이미 부정된 것이다. 기본 갈등에서 두려움은 실제로 무고, 사랑은 모든 것이다. 빛이 어둠 속으로 들어오면 어둠은 폐지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그가 믿는 것이 참이다. 이런 의미에서 분리는 정녕 일어났으며, 이것을 부정하는 것은 단지 부정을 그릇되게 사용하는 것이다. 하지만, 잘못에 집중하는 것은 단지 방어기제를 한층 더 그릇되게 사용하는 것이다. 진정한 교정 절차는 잘못을 일시적으로 인식하되, 즉각적인 교정이 필수적이라는 지표로서만 인식하는 것이다. 이것은 속죄를 지체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 상태를 확립한다.
100 하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것과 무 사이에는 어떤 절충안도 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강조되어야 한다. 시간은 본래 이런 면에서 모든 절충안을 포기하도록 돕는 도구다. 시간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기간이라는 개념을 자체 안에 포함하므로, 서서히 폐지되는 듯이 보인다. 창조를 그릇되게 사용함으로써, 교정 도구로서 이런 것이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하느님이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이 낳은 유일한 아들을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리라.”라는 말씀이 전적으로 의미가 있으려면, 한 부분만 살짝 고치면 된다. 즉, 이 문장은 “하느님이 세상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당신이 낳은 유일한 아들에게 주셨으니, 그를 믿는 자는….”라고 읽어야 한다.
101 하느님께는 오로지 한 아들만 있다는 점에 특히 주목해야 한다.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영혼들이 정녕 그분의 아들들이라면, 각각의 영혼은 분명 온아들 전체의 필수적인 부분일 것이다. 너는 전체가 그것의 부분들보다 크다는 개념을 어렵지 않게 이해한다. 따라서 이것을 이해하기가 그리 힘들지는 않을 것이다.
102 하나인 상태에 있는 온아들은 실로 자신의 부분들의 합을 초월한다. 하지만 그중 어떤 부분이라도 없는 한, 이 사실은 가려진다. 그러므로 온아들의 모든 부분들이 돌아오기 전에는 기본 갈등이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다. 그들이 모두 돌아왔을 때, 온전성의 진정한 의미가 비로소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103 온아들 중 어떤 부분이라도 스스로 선택하기에 따라 잘못이나 불완전성을 믿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한다면, 무의 존재를 믿는 것이다. 이런 잘못에 대한 교정이 곧 속죄다. 우리는 이미 준비되어 있음에 대해 간략하게 말했지만, 여기서 도움이 되는 요점이 몇 가지 더 있다. 준비되어 있음은 성취를 위한 전제 조건에 불과하다.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준비되어 있음의 상태가 일어나자마자 대개는 성취하려는 뜻이 어느 정도 있지만, 그것이 반드시 갈라지지 않은 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 상태는 뜻의 전환을 위한 잠재력 이상을 의미하지 않는다.
104 통달을 성취하기 전에는 확신을 충분히 개발할 수 없다. 우리는 이미 두려움을 정복할 수 있다는 근본적인 잘못을 교정하려고 했고, 오로지 사랑에만 통달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너희는 단지 준비되어 있음만 입증했을 뿐이다. 사랑의 통달에는 너희 둘이 이제껏 도달한 확신보다 훨씬 더 완전한 확신이 필요하다. 하지만 준비되어 있음은 최소한 너희가 이것이 가능하다고 믿는다는 지표다. 그것은 확신의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준비되어 있음과 통달 사이에 엄청난 시간이 필요함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렇게 오해할 경우에 대비해, 시간과 공간은 나의 통제 아래 있음을 다시 일깨워 주고자 한다.
105 마법과 기적 사이의 혼동을 교정할 수 있는 주된 방법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자기 자신을 창조하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사람은 자기중심적으로 될 때 이것을 잊기 쉬우며, 그러면 어떤 형식으로든 마법을 믿을 수밖에 없는 입장에 처하게 된다. 창조하고자 하는 사람의 뜻은, 당신의 창조물 안에 그와 똑같은 뜻을 표현하신 창조주가 주신 것이다. 창조 능력은 마음 안에 놓여있으므로, 사람이 창조하는 모든 것은 반드시 뜻의 문제다. 그리고 사람이 창조하는 것은 무엇이든 그가 보기에는 실제지만, 하느님이 보시기에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기본적인 구분은 우리를 최후의 심판의 진정한 의미로 곧장 인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