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기적에 대한 안내

I. 기적의 원리

1 1. 기적들 사이에는 난이도가 없다. 어떤 기적이 다른 기적보다 더 “어렵거나” “크지” 않다. 기적들은 모두 똑같다. 사랑의 표현은 모두 최대치로 나타난다.

2 2. 이러한 기적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기적의 근원인데, 이는 사람이 결코 평가할 수 없는 것이다.

3 3. 기적은 사랑의 표현으로서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진정한 기적은 기적을 고취하는 사랑이다. 이런 의미에서, 사랑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기적이다.

4 4. 기적은 모두 생명을 의미하며, 하느님이 바로 생명을 주는 분이시다. 하느님의 음성은 너를 매우 구체적으로 인도하며, 네가 알 필요가 있는 모든 것에 대해 말해줄 것이다.

5 5. 기적은 습관으로서,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involuntary 일어나야 한다. 기적은 의식적인 통제 아래 있어서는 안 된다. 의식적으로 선택된 기적은 잘못 인도될 수 있다.

6 6. 기적은 자연스럽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무언가 잘못된 것이다.

7 7. 기적은 모든 이의 권리지만, 먼저 정화가 필요하다.

8 8. 기적은 치유다. 일시적으로 더 많이 가진 자가 일시적으로 더 적게 가진 자를 위해 기적을 행한다는 점에서, 기적은 결핍된 것을 공급해 주기 때문이다.

9 9. 기적은 일종의 교환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항상 기적적인 사랑의 모든 표현들처럼, 이러한 교환도 물리 법칙을 뒤집는다. 기적은 주는 자는 물론 받는 자에게도 사랑을 더 많이 가져다준다.

10 10. 믿음을 유발하기 위한 구경거리로 기적을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적의 목적을 오해하는 것이다. 실제로 기적은 믿는 자를 위해, 믿는 자에 의해 사용된다.

11 11. 기도는 기적의 매개다. 기도는 창조된 자들이 창조주와 나누는 자연스러운 소통이다. 기도를 통해 사랑이 받아들여지고, 기적을 통해 사랑이 표현된다.

12 12. 기적은 생각이다. 생각들은 낮은 수준의 실재나 높은 수준의 실재를 나타낼 수 있다. 이것이 주지화하기와 생각하기의 근본적인 차이점이다. 주지화하기는 물질적인 것을 만들고, 생각하기는 영적인 것을 창조한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만들거나 창조하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는다.

13 13. 기적은 시작이자 끝이다. 따라서 기적은 시간의 순서를 바꾼다. 기적은 항상 재탄생의 확인이며, 재탄생은 되돌아가는 듯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기적은 현재 안에서 과거를 무효화하며, 그럼으로써 미래를 해방한다.

14 14. 기적은 진리를 증언한다. 기적은 확신에서 일어나므로 확신을 준다. 확신 없는 기적은 마법으로 전락한다. 마법은 무분별한mindless 것이며, 따라서 마음을 파괴적으로,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창조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15 15. 매일매일을 기적에 바쳐야 한다. 시간의 목적은 사람이 시간을 건설적으로 사용하는 법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시간은 가르침의 도구자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배움을 촉진하는 용도가 사라졌을 때, 시간은 멈출 것이다.

16 16. 기적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축복받은 일임을 보여주기 위한 가르침의 도구다. 기적은 동시에, 주는 자의 힘을 증가시키면서 받는 자에게도 힘을 공급해 준다.

17 17. 기적은 몸을 초월하는 것이다. 기적은 더 낮은 차원의 실재에 대한 느낌에서 벗어나, 불가시성으로 갑작스레 이동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기적이 치유하는 까닭이다.

18 18. 기적은 섬김이다. 기적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행할 수 있는 최대치의 섬김이다. 기적은 너의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방법이다. 기적을 행하는 자는 자기 자신과 이웃의 헤아릴 수 없는 가치를 동시에 인식한다.

19 19. 기적은 마음들을 하느님 안에서 하나로 만든다. 기적은 협력에 의존한다. 온아들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모든 영혼들의 총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적은 시간의 법칙이 아닌 영원의 법칙에 의거한다.

20 20. 기적은 몸이 아닌 영이 진리의 제단이라는 자각을 다시 일깨운다. 기적의 치유력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서 비롯된다.

21 21. 기적은 총체적인 용서의 자연스러운 표현이다. 사람은 기적을 통해 다른 이들에게 하느님의 용서를 확장하며, 그럼으로써 그것을 받아들인다.

22 22. 기적이 두려움과 결부되는 유일한 이유는, 어둠을 감출 수 있다는 그릇된 믿음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볼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으며, 사람의 육안은 어둠 속에서 볼 수 없다. 이것은 아주 원시적인 해결책으로서, 그 결과로 사람은 영안을 부정하게 되었다. 어둠에서 벗어나는 데는 다음의 두 단계가 있다:

23 A. 첫 번째 단계는, 어둠을 감출 수 없다는 인식이다. 이 단계에는 보통 두려움이 수반된다.

24 B. 두 번째 단계는, 네가 비록 감출 수 있다 하여도 감추기를 원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인식이다. 이 단계는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25 23. 기적은 지각을 재정돈하여, 지각의 수준들을 바른 관점에서 배치한다. 이것은 모든 수준에서 치유한다. 병은 수준 혼동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26 아무것도 감추지 않으려 하게 되었을 때, 너는 영적 교통communion에 들어가려 할 뿐만 아니라 평화와 기쁨도 이해할 것이다. 너는 아직 전적으로 헌신하고 있지 않으며, 따라서 가르칠 것보다는 배울 것이 여전히 더 많다. 너의 평형 상태가 안정화되면 너는 배우는 만큼 가르칠 수 있을 것이며, 그로 인해 적절한 균형을 찾을 것이다. 그동안은 어떤 노력도 낭비되지 않음을 기억하라. 네가 이것을 기억하지 않는 한, 한계가 전혀 없는 나의 노력의 성과를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로지 영원만이 실제다. 그렇다면 왜 시간이라는 환상을 건설적으로 사용하지 않는가?

27 24. 기적은 사람이 병든 자를 치유하고 죽은 자를 일으킬 수 있게 한다. 사람이 병과 죽음을 만들었으며, 그것들을 폐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네가 바로 너의 창조주처럼 창조할 수 있는 기적이다. 그 밖의 모든 것은 너 자신의 악몽일 뿐, 존재하지 않는다. 오로지 빛의 창조물들만이 실제다.

28 25. 기적은 서로 맞물린 용서 사슬의 일부며, 이 사슬이 완성될 때 그것이 바로 속죄다. 이 과정은 항상, 시간의 모든 차원에서 진행된다.

29 나는 속죄 과정을 주관하며, 이 과정은 내가 시작했다. 네가 나의 형제들 중 누구에게라도 기적을 베푼다면, 그것은 너 자신과 나에게 기적을 베푸는 것이다. 여기서 네가 나보다 먼저 언급된 이유는, 나는 나 자신의 속죄를 위한 기적이 필요 없지만, 네가 일시적으로 실패할 경우에 대비해 그 과정의 끝 지점에 서있기 때문이다. 속죄에서 내가 맡은 역할은, 사람들이 다른 식으로는 교정하지 못할 사랑의 결핍을 모두 상쇄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한다. “죄”라는 단어는 “사랑의 결핍”으로 바꿔야 한다. “죄”는 사람이 만든 단어로써, 사람이 스스로 지어낸 위협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재적인 위협은 어디에도 없다. 너희 자신을 겁주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파괴적이다.

30 26. 기적은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필요로 한다. “속죄하기”는 실제로 “무효화하기”를 의미한다. 두려움을 무효화하는 것이 기적의 속죄 가치에서 극히 중요한 부분이다.

31 속죄의 목적은 모든 것을 너에게 회복해 주는 것, 더 정확히 말하자면 모든 것을 너의 의식에 회복해 주는 것이다. 네가 창조될 때, 다른 모든 이들처럼 너에게도 모든 것이 주어졌다. 너의 본래 상태에 대한 인식을 회복했을 때, 너는 자연스럽게 속죄의 일부가 된다. 나는 너와 다른 이들 안에서 사랑의 결핍을 용인할 수 없으며, 너는 그러한 용인할 수 없음을 공유함에 따라 사랑의 결핍을 교정하기 위한 대십자군 원정에 동참해야 한다. 이 원정의 구호는 “듣고, 배우고, 행하라.”, 즉 “내 음성을 듣고, 잘못을 무효화하는 법을 배우고, 그것을 교정하기 위해 무언가를 행하라.”이다. 듣고 배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무리의 참된 구성원들은 활동적인 일꾼들이다

32 기적을 행할 권능은 너에게 있다. 나는 기적을 행할 기회를 제공하겠지만, 너는 준비를 갖추고 용의를 내야 한다. 너에게는 이미 기적을 행할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너는 기적을 행함으로써 그 능력을 확신하게 된다. 확신은 실제로 성취를 통해 오기 때문이다. 기적을 행할 능력은 기적을 행할 잠재력이고, 기적을 성취하는 것은 그 능력의 표현이며, 속죄는 그 목적이다.

33 27. 기적은 하느님이 나를 통해 나의 모든 형제들에게 베푸시는 보편적인 축복이다. 기적은 용서받은 자가 가진 용서하는 특권이다.

34 나는 사도들에게 주님의 의사가 되어 다른 이들을 치유하라고 구체적으로 말했다. 또한 그들 자신을 치유하라는 말도 했고, 결코 그들을 떠나거나 저버리지 않겠다는 약속도 했다. 속죄는 하느님의 아이들의 타고난 소명이다. 그들은 나에게 믿음을 고백했기 때문이다. “하늘과 땅이 사라질 것이다.”라는 말은 단지 하늘과 땅이 계속해서 분리된 상태로 존재하지는 않을 것임을 의미한다. 내 말은 부활이자 생명이며,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빛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네가 바로 하느님의 작품이며, 그분의 작품은 온전히 사랑스럽고 온전히 사랑한다.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에 대해 반드시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의 정체기 때문이다.

35 28. 기적은 의식의 여러 수준들을 정돈하는 수단이다.

36 기적은 하위의식, 즉 잠재의식 수준에서 나온다. 계시는 상위의식, 즉 초의식 수준에서 나온다. 의식 수준은 그 사이에 있으면서, 잠재의식이나 초의식의 충동에 다양한 비율로 반응한다. 의식은 이 세상에 관여하는 수준으로서, 잠재의식과 초의식 모두에 반응할 수 있다. 의식은 그 자체에서 오는 충동이 전혀 없으며, 또한 본래 반응을 이끌어내기 위한 기제mechanism인 까닭에, 매우 잘못될 수 있다.

37 계시는 의심과 두려움이 완전히 중지된 상태를 이끌어내지만, 그 상태는 일시적이다. 계시는 하느님과 그분의 영혼들 사이에 존재하는 원래의 소통 형식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창조물에 대한 극도로 개인적인 친밀감이 수반된다. 사람은 육체적인 관계에서 이런 느낌을 찾으려고 한다. 하지만 육체적인 친밀함은 이것을 성취할 수 없다. 잠재의식의 충동은 본래 기적을 이끌어낸다. 기적은 순수하게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다른 이들에 대한 진정한 친밀함을 낳는다. 그러나 개인적인 의도를 가진 고집스러운 의식은 이것을 육체적인 만족을 얻기 위한 충동으로 오해할 수 있다.

38 계시는 영혼들을 하느님과 직접 결합한다. 기적은 마음들을 서로와 직접 결합한다. 계시도 기적도 의식에서 나오지 않지만, 둘 다 의식에서 경험된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하다. 의식은 비록 행위를 고취하지는 않지만, 행위를 이끌어내는 상태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자신이 선택하는 것을 믿을 자유가 있고, 그의 행위는 그의 믿음을 입증한다. 잠재의식의 더 깊은 수준에는 항상 기적 충동이 들어있지만, 사람에게는 의식에 더 가까운 잠재의식의 보다 피상적인 수준을 이 세상의 충동들로 채워 넣은 후, 자신을 그것들과 동일시할 자유가 있다. 그 결과 사람은 스스로 그 밑에 있는 기적 수준에 접근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면 행위를 할 때 그의 관계도 피상적이 되어, 기적에 의해 고취되는 관계 맺기가 불가능해진다.

39 29. 기적은 두려움으로부터의 해방을 얻는 방법이다.

40 계시는 두려움이 이미 폐지된 상태를 이끌어낸다. 따라서 기적은 수단이고, 계시는 목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계시와 기적은 협력한다.] 기적은 계시에 의존하지 않으며, 계시를 이끌어낸다. 계시는 지극히 개인적이며, 사실상 의식적인 내용으로 옮길 수 없다. 그러므로 계시를 말로 묘사하려는 어떤 시도도 대개는 이해 불가능하다. 계시는 오로지 경험만을 이끌어낸다. 반면에 기적은 [사람들 사이에서] 행위를 이끌어낸다. 기적의 비개인적인 특성 때문에, 지금은 기적이 더 유용하다. 이러한 학습 단계에서는 기적을 행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를 너에게 억지로 떠안길 수는 없기 때문이다.

41 30. 기적은 사람을 통해 하느님을 찬미한다. 기적은 하느님의 창조물들에게 경의를 표함으로써 하느님을 찬미하며, 그들의 완벽함을 확인한다. 기적은 몸과의 동일시를 부정하고 영혼과의 동일시를 확인하므로, 치유한다. 기적은 영을 지각함으로써 수준들을 조정하여 그것들을 제대로 정렬된 상태로 본다. 이것은 영을 중심에 놓아주며, 그곳에서 영혼들은 직접적으로 소통할 수 있다.

42 31. 기적은 경외심이 아닌 감사를 고취해야 한다. 사람은 자신의 진정한 정체에 대해 하느님께 감사드려야 한다. 하느님의 아이들은 매우 거룩하며, 기적은 그들의 거룩함에 경의를 표한다.

43 하느님의 창조물들은 자신의 거룩함을 결코 잃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감춰질 수는 있지만 말이다. 기적은 그 거룩함을 드러내어 그것이 본래 속한 빛 속으로 가져간다. 사람은 자신의 거룩함을 실제로 어둠 속에 감출 수 없지만, 이에 대해 자기 자신을 속일 수는 있다. 이런 환상은 사람을 두렵게 만든다. 그는 마음 깊은 곳에서 그것이 환상임을 알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런 환상의 실재성을 확립하려고 엄청난 노력을 기울인다. 기적은 실재를 실재가 본래 속한 곳에 놓아준다. 영원한 실재는 오로지 영혼에게만 속하며, 기적은 오로지 진리만을 인정한다. 따라서 기적은 사람이 자기 자신에 대해 가진 환상들을 물리쳐서, 그가 자기 자신은 물론 하느님과도 영적 교통 상태에 있게 해준다.

44 32. 그리스도가 모든 기적을 고취하는데, 그것은 실제로 중보기도다. 기적은 사람의 거룩함을 위해 중보하고, 그의 지각을 거룩하게 만든다. 기적은 사람을 물리 법칙 너머에 놓아줌으로써 천상의 질서 영역으로 올려놓는다. 이러한 질서에서, 사람은 정녕 완벽하다.

45 영혼은 하느님과의 영적 교통을 결코 잃지 않는다. 오로지 마음만이 속죄가 필요하다. 기적은 마음을 영을 섬기는 위치에 놓아줌으로써, 그리스도의 속죄에 동참한다. 이것은 마음의 제 기능을 확립하고, 마음의 잘못을 교정한다.

46 33. 기적은 사람에게 경의를 표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래 사랑스럽기 때문이다. 기적은 사람에 대한 환상들을 몰아내고, 그의 내면에서 빛을 지각한다. 이와 같이 기적은 사람을 그 자신의 악몽에서 자유롭게 풀어주어 그의 잘못을 속죄한다. 기적은 사람을 그 자신을 가둔 감옥에서 석방하며, 그의 마음을 환상에서 자유롭게 풀어주어 제정신을 회복해 준다. 사람의 마음은 환상에 사로잡힐 수 있지만, 그의 영은 영원히 자유롭다. 사랑 없이 지각하는 마음은 빈껍데기를 지각하면서 그 안의 영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그러나 속죄는 영혼을 제자리로 회복해 준다. 영을 섬기는 마음은 상처받을 수 없다.

47 34. 기적은 마음을 충만한 상태로 회복해 준다. 기적은 결핍을 속죄함으로써 완벽한 보호를 확립한다. 영혼의 강함은 침범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다. 용서받은 자는 영혼으로 채워져서, 그 보답으로 용서한다. 자신의 형제들을 해방하는 것이야말로 해방된 자들의 의무다.

48 용서받은 자들은 정녕 속죄의 수단이다. 그리스도에 의해 해방된 자들은 자신의 형제들을 해방하는 일에 동참해야 한다. 그러한 것이 바로 속죄 계획이기 때문이다. 기적은 영을 섬기는 마음들이 하느님의 모든 창조물들의 구원, 즉 해방을 위해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방법이다.

49 35. 기적은 사랑의 표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항상 관찰할 수 있는 결과를 낳는 것은 아니다. 나는 기적을 무차별적으로 행할 수 있는 유일한 자다. 왜냐하면, 내가 곧 속죄기 때문이다. 너에게는 속죄에서 맡은 역할이 있는데, 그것은 내가 일러주겠다. 네가 어떤 기적을 행해야 할지 나에게 물어라. 이것은 너를 지치지 않게 해줄 것이다. 너는 나와의 직접적인 소통 아래 행할 것이기 때문이다.

50 36. 그리스도가 통제하는 기적들은 속죄의 일부지만, 그리스도의 안내는 개인적인 것으로서 개인적인 구원으로 이어진다. 기적의 비개인적인 특성은 아주 중요한 요소다. 그것은 나로 하여금 기적들의 배분을 통제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안내는 지극히 개인적인 계시 경험으로 이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안내가 개인적인 선택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안내자는 통제하지 않지만 길을 가리켜 보여주며, 따르는 것은 너의 몫으로 남겨둔다. “우리를 유혹으로 인도하지 마소서.”는 “우리가 우리의 잘못에서 벗어나도록 안내하소서.”를 의미한다. “너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는 “너의 잘못을 알아차리고, 나의 안내를 따름으로써 잘못을 버리기로 선택하라.”를 의미한다.

51 잘못은 진리를 실제로 위협할 수 없으며, 진리는 잘못을 항상 이겨낼 수 있음을 기억하라. 오로지 잘못만이 실제로 취약하다. 너에게는 적절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너의 왕국을 세울 자유가 있지만, 다음을 기억한다면 바른 선택은 불가피하다:

52 영혼은 영원히 은혜받은 상태에 있다.

사람의 실재는 오로지 그의 영혼이다.

따라서 사람은 영원히 은혜받은 상태에 있다.

53 속죄는 이러한 관점에서 모든 잘못을 무효화함으로써, 두려움의 진짜 근원을 뿌리 뽑는다. 이렇게 안심시켜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위협적이라고 느낀다면, 그것은 항상 네가 잘못된 것에 충성하면서 그것을 방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투사에는 항상 이러한 것이 수반된다. 잘못은 사랑의 결핍이다. 네가 이것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한다면 과연 그를 가두겠지만, 단지 그가 이미 범한 잘못을 강화하는 정도까지만 그렇게 한다. 그는 이미 그 자신에 대한 지각이 왜곡되어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왜곡에 취약해진다. 기적일꾼은 오로지 축복할 수 있을 뿐이며, 이것은 다른 이들의 왜곡을 무효화하여 그들을 감옥에서 해방한다.

54 37. 기적은 바른 사고의 사례다. 모든 수준에서 실재와의 접촉이 강력하고 정확해져서, 한 사람 안에서는 물론 다른 사람들 사이에서도 경계선이 바르게 그려지게 된다. 그 결과 기적을 행하는 자의 지각은 하느님이 창조하신 대로의 진리에 맞춰 정렬된다.

55 38. 기적은 내가 거짓된 사고방식 안으로 도입한 교정 요인이다. 기적은 일종의 촉매로 작용하여, 그릇된 지각을 뒤흔들어 적절하게 재정돈한다. 이것은 사람을 속죄 원리 아래에 두며, 그곳에서 그의 지각이 치유된다. 이것이 일어나기 전에는, 신적 질서의 계시가 불가능하다.

56 39. 영안은 기적의 기제다. 영안이 지각하는 것은 정녕 참이기 때문이다. 영안은 하느님의 창조물들은 물론 사람의 창조물들도 지각한다. 영안은 또한 선별적이지 않고 총체적으로 지각하는 능력으로, 사람의 창조물들 가운데 거짓된 것으로부터 참된 것을 분리해 낼 수 있다. 따라서 영안은 실재 검증reality testing을 위한 적절한 도구가 되는데, 이것에는 항상 거짓된 것과 참된 것을 구분하는 필수적인 과정이 포함된다.

57 40. 기적은 잘못을 해소한다. 영안은 잘못을 거짓된 것, 즉 실제가 아닌 것으로 확인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빛을 지각함으로써 어둠이 자동적으로 사라진다고 말하는 것과도 같다.

58 죄가 사랑의 결핍이듯, 어둠은 빛의 결핍이다. 어둠은 그 자체로는 고유한 특성이 없다. 어둠은 “희소성” 오류의 한 사례로서, 이로부터는 오로지 잘못만 나올 수 있다. 진리는 언제나 풍요롭다. 자신이 모든 것을 가졌음을 지각하고 인정하는 자는 어떤 종류의 강박적인 행동도 할 필요가 없다.

59 41. 기적은 모든 사람을 너의 형제요 나의 형제로 인정한다. 기적은 그들 안에서 하느님의 보편적인 표시를 지각하는 방법이다. 하느님의 아들들이 가진 특별성은 배제가 아닌 포함함에서 생겨난다. 나의 모든 형제들은 특별하다. 그들이 무엇이든 박탈당했다고 믿으면, 그들의 지각은 왜곡된다. 이런 일이 일어날 때 하느님의 온 가족, 즉 온아들의 관계가 손상된다. 하느님의 가족을 이루는 각각의 구성원들은 결국에는 돌아와야 한다. 기적은 그들에게 돌아오라고 부른다. 그들이 비록 영의 자리에 없더라도, 기적은 그들을 축복하고 경의를 표하기 때문이다.

60 “하느님은 조롱받지 않으신다.”라는 말은 경고가 아니라, 이 점에 대해 안심시켜주는 말이다. 만약 하느님의 창조물들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거룩함이 없다면, 하느님은 정녕 조롱받으실 것이다. 창조물은 정녕 온전하며, 온전성의 표시가 바로 거룩함이다.

61 42. 온전성은 기적이 지각하는 내용이다. 따라서 기적은 결핍이라는 그릇된 지각을 모든 곳에서 교정한다. 즉, 속죄한다.

62 여기서 우리는 기적과 투사를 근본적으로 구분하기 시작한다. 자극이 먼저 있어야 반응이 있을 것이며, 자극은 촉발되는 반응의 종류도 결정할 것이다. 행동은 반응이며, 따라서 “무엇에 대한 반응인가?”라는 질문이 아주 중요해진다. 그런데 자극은 지각을 통해 확인되므로, 너는 먼저 자극을 지각한 다음에 그에 따라 행동한다. 그러므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63 너는 네가 지각하는 대로 행동할 것이다.

64 황금률은 다른 사람이 너에게 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그에게 해줄 것을 요구한다. 이는 너와 상대방 둘 다에 대한 지각이 정확해야 함을 의미한다. 황금률은 적절한 행동을 위한 법칙이다. 정확하게 지각하지 않는 한 적절하게 행동할 수 없다. 적절한 행동은 수준 혼동이 없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준 혼동이 있으면 실재 검증 결과가 항상 가변적이 되며, 따라서 무엇이 적절한 행동인지도 가변적이 된다. 너와 너의 이웃은 한 가족의 동등한 구성원이므로, 너는 너와 너의 이웃 둘 다를 지각하는 대로 둘 다에게 그렇게 행동할 것이다. 황금률에 따라 행동하기 위해 지각하는 방법은, 먼저 너 자신의 거룩함을 지각한 다음에 밖으로 눈을 돌려 다른 사람들의 거룩함을 지각하는 것이다.

65 두려움이 낳은 공허는 반드시 사랑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사랑과 사랑의 부재는 같은 차원에 있으며, 교정은 같은 차원이 아니고서는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거기에는 분명 수준 혼동이 있었다. 죽음은 사람이 증오에 대한 믿음, 즉 수준 혼동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성서가 “죽음은 없다.”라고 말하고, 내가 죽음은 존재하지 않음을 보여준 까닭이다. 나는 율법을 재해석함으로써 완성하러 왔다. 제대로만 이해한다면, 율법 자체는 사람에게 오로지 보호만을 제공할 뿐이다. 율법에 “지옥 불”의 개념을 끼워 넣은 자들은 아직 “자신의 마음을 바꾸지 않은” 자들이다.

66 나는 누구든지 나를 허락하는 자를 위해, 그가 허락하는 정도까지 증언하겠다고 확약한다. 너의 믿음은 너의 증언을 통해 입증되고, 그런 식으로 강화된다. 나를 위해 증언하는 자들은, 본래 그들의 것이라고 배운 풍요를 위해 박탈에 대한 믿음을 버렸음을 그들의 기적을 통해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67 43. 기적은 사람을 부적절한 고립감과 박탈감, 결핍감에서 해방하는 힘이 있다. 이것이 바로 기적이 주되게 공헌하는 점이다.

68 기적은 온아들에 대한 확인이며, 온아들이란 곧 완성과 풍요로움의 상태다. 참되고 실제인 것은 모두 영원하며, 변하거나 변화될 수 없다. 따라서 영혼은 이미 완벽하기에 바뀔 수 없지만, 마음은 자신이 섬기려는 수준을 선택할 수 있다. 마음의 선택에 가해진 유일한 제한은 바로, 마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점이다.

69 마음은, 그렇게 하기로 선택한다면, 영혼이 자신의 창조를 따라 창조하는 수단이 된다. 그렇게 하기로 자유롭게 선택하지 않는다면, 마음은 자신의 창조적 잠재력은 보유하겠지만, 자신을 진정으로 권위 있는 통제가 아닌 폭정 아래 두게 된다. 그 결과 마음은 감금한다. 그러한 것이 바로 폭군의 명령이기 때문이다. 너의 마음을 바꾼다는 것은 곧 그것을 진정한 권위의 처분에 맡긴다는 의미다.

70 이와 같이 기적은 마음이 그리스도를 섬기기 위해 그의 인도를 받기로 선택했다는 표시다. 그리스도의 풍요는 그를 따르겠다는 선택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얕은 뿌리들은 전부 뿌리 뽑혀야 한다. 그것들은 너를 지탱해 줄 만큼 깊지 않기 때문이다. 얕은 뿌리를 깊게 해서 버티게 만들 수 있다는 환상이야말로 역전된 황금률이 근거하는 왜곡들 가운데 하나다. 이런 가짜 지지대를 포기함에 따라 평형 상태가 일시적으로 불안정하게 되는 것을 경험한다. 하지만 사실 위아래가 뒤집힌 방향보다 더 불안정한 것은 없다. 그리고 어떤 것이든 방향을 그렇게 유지해 주는 것이 안정성을 높이는 데 진정으로 도움이 될 수는 없다.

71 44. 기적은 마음의 기적적인 상태로부터 일어난다. 이 마음 상태는 하나기 때문에, 심지어 기적일꾼 자신이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모든 이에게 뻗어나간다. 이렇게 기적이 비개인적인 특성을 갖는 이유는, 속죄 자체가 하나로서 모든 창조물을 그 창조주와 연합하기 때문이다.

72 45. 기적은 그리스도를 내면에서 알아차리고, 그리스도의 속죄를 받아들였다는 표현이다. 그러면 마음은 은혜받은 상태가 되어, 자연스럽게 내면의 주인은 물론 바깥의 낯선 이에게도 은혜롭게 된다. 네가 낯선 이를 안으로 맞아들임으로써, 그는 너의 형제가 된다.

73 46. 기적은 결코 상실되지 않는다. 기적은 심지어 네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며, 때로는 네가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세력들에서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변화를 일으킨다. 이것은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다. 기적은 항상 너를 축복할 것이다.

74 네가 행하도록 요청받지 않은 기적이라고 해서 그 가치를 잃은 것은 아니다. 그러한 기적은 여전히 너의 은혜받은 상태의 표현이다. 하지만 기적의 행위 측면은 그리스도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전체 계획을 완전히 알아차리고 있기 때문이다. 기적심의 비개인적인 특성은 너의 은혜를 보장하지만, 은혜가 어디에 베풀어질 수 있는지 아는 위치에 있는 자는 그리스도뿐이다.

75 47. 기적심은 기적을 위해 준비된 상태를 의미한다. 준비된 상태란 네가 항상 준비되어 있고, 용의가 있으며, 능력이 있도록 너의 지각을 항상 바르게 갖추고 있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것들이 바로 “듣고, 배우고, 행하라.”의 본질적인 요소들이다. 너는 들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고, 배울 용의가 있어야 하며, 행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그중 맨 마지막 요소만이 너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통제를 받아야 하는 기적의 적용 측면이기 때문이다. 기적심의 자발적인voluntary 측면인 나머지 두 요소는 정녕 너에게 달려있다.

76 48. 기적에 경외심으로 반응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77 계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의 경험이므로, 그야말로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경외심은 계시에 아주 정확히 들어맞는 것으로서, 계시를 위해 남겨두어야 한다. 기적에 경외심을 보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경외하는 상태는 숭배하는 상태기 때문이다. 이것은 더 낮은 순위의 존재가 더 위대한 존재 앞에 서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오로지영혼이 자신의 창조주 앞에 서있을 경우에만 해당된다. 영혼들은 완벽한 창조물로서, 완벽함을 창조하신 창조주의 현존 앞에서만 경외를 경험한다.

78 반면에 기적은 동등한 자들이 주고받는 사랑의 표시다. 동등한 자들은 서로를 경외하면 안 된다. 경외는 동등하지 않음을 함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외는 나에게 적절한 반응이 아니다. 형은 경험이 더 많기에 존경받을 자격이 있고, 지혜가 더 많기에 합당한 정도의 순종을 받을 자격도 있다. 그리고 형은 형제들 중 하나기에 사랑받을 자격이 있으며, 스스로 헌신하고 있다면 헌신을 받을 자격도 있다. 오로지 나의 헌신만이 나에게 너의 헌신을 받을 자격을 부여해 준다. 내가 가진 것 중에 네가 이룰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나는 하느님에게서 오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 이제까지 우리 사이의 주된 차이점은, 나는 다른 것은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이것은 나를 진정한 거룩함의 상태에 있게 해준다. 하지만 네 안에서 그 상태는 단지 가능성일 뿐이다.

79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가지 못한다.”라는 말은 성서에서 가장 오해받는 말들 가운데 하나다. 이 말은, 시간 안에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가 너와 어떤 식으로든 분리되어 있거나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러나 시간은 실제로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인용문은 사실 수평축이 아니라 수직축에서 고려할 때 더 의미가 있다. 수직축을 따라 고려할 때, 사람은 나의 아래에 있고 나는 하느님 아래에 있다. “올라가는” 과정에서, 나는 과연 더 높이 있다. 이런 이유는, 내가 없다면 하느님과 사람 사이의 간격이 네가 건너기에는 너무 넓을 것이기 때문이다.

80 한편으로는 사람의 형으로서, 다른 한편으로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나는 그 간격을 다리를 놓아 메운다. 나는 형제들에게 헌신함으로써 온아들을 주관하게 되었지만, 내가 온아들을 공유할 수 있는 정도까지만 온아들을 완성할 수 있다. 이것은 “나와 나의 아버지는 하나다.”라는 말과 모순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말에는 아버지가 더 크시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분리된 부분들이 있다. (본래 이 말은 “한 종류다.”이었다.) 성령은 계시를 가져다주는 자다. 계시는 나에 의해 간접적으로 고취된다. 나는 성령과 가까우며, 나의 형제들이 계시를 위해 준비되었는지 주의를 바짝 기울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들이 그들 자신에게 가져올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가져다줄 수 있다.

81 49. 성령은 최고의 소통 매체다. 기적은 일시적인 소통 도구인 까닭에, 이런 종류의 소통을 포함하지 않는다. 사람이 하느님과 나누는 본래의 소통 형식으로 돌아가면, 기적의 필요성은 사라진다. 성령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가는 소통을 매개하여, 하느님으로부터 사람에게 이르는 직통 채널을 계시를 위해 열어놓는다. 계시는 상호적이 아니다. 계시는 항상 하느님으로부터 사람에게 간다. 기적은 동등성을 수반하므로, 상호적이다.

82 50. 기적은 시간의 필요성을 줄여주는 학습 도구다. 수직면이나 수평면상에서, 온아들의 모든 구성원의 진정한 동등성을 인식하려면 거의 끝없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하지만 기적은 수평적인 지각으로부터 수직적인 지각으로 갑작스럽게 전환을 일으키면서 간격을 하나 들여오는데, 기적을 행하는 자와 받는 자는 둘 다 그렇지 않았을 경우보다 그 간격으로부터 시간상으로 훨씬 더 멀리 벗어난다.

83 이처럼 기적에는 기적이 차지하는 시간 간격을 불필요하게 만들어서 시간을 단축하는 독특한 특성이 있다. 하나의 기적에 걸리는 시간과 그 기적이 망라하는 시간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기적은 수천 년이 걸렸을 수도 있는 배움을 대체한다. 기적이 이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기적을 행하는 자와 받는 자의 완벽한 동등성과 거룩함에 대한 인식이 저변에 깔려있기 때문이다. 기적은 바로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다.

84 우리는 앞에서 기적이 시간을 폐지한다고 말했다. 기적은 시간을 붕괴시킴으로써 그 안의 특정 간격을 폐지하는 과정을 통해 그렇게 한다. 하지만 기적은 더 큰 시간의 연속 안에서 그렇게 한다. 기적은 정형화된 틀을 벗어난 시간 간격을 제정하는데, 이 간격은 통상적인 시간 법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오로지 이러한 의미에서만, 기적은 무시간적이다. 기적은 시간을 붕괴시킴으로써, 문자 그대로 시간을 절약한다. 마치 일광 절약 시간제처럼, 기적은 빛의 배분을 재조정한다.

85 51. 기적은 사람이 시간 통제를 위해 즉시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유일한 도구다. 계시는 시간과 전혀 관계가 없기에, 오로지 계시만이 시간을 초월한다.

86 기적은 그 자체가 필요 없는 상태를 촉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학습 도구라는 점에서, 몸과 아주 비슷하다. 직접적인 소통이라는 영혼의 본래 상태에 도달하면, 몸과 기적은 어떤 목적에도 기여하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이 스스로 몸 안에 있다고 믿는 동안은, 사랑 없는 표현 채널과 기적적인 표현 채널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다. 그는 빈껍데기를 만들 수는 있지만, 전혀 아무것도 표현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는 기다리고, 꾸물거리고, 자신을 마비시키고, 자신의 창조성을 거의 없어질 때까지 축소할 수 있으며, 심지어 발달 정지나 퇴행을 도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창조성을 폐지할 수는 없다. 그는 자신의 소통 매체를 파괴할 수는 있지만, 자신의 잠재력은 파괴할 수 없다.

87 사람은 자신의 자유 의지에 의해 창조되지 않았다. 사람은 단지 무엇을 창조할지만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 기적심을 가진 자는 필요 이상으로 시간을 기다리지 않겠다는 근본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 시간은 소모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소모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기적일꾼은 시간 통제 요인을 기쁘게 받아들인다. 그는 시간이 붕괴될 때마다 모든 사람이 시간으로부터의 궁극적인 해방에 더 가까워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아들과 아버지는 하나다.

88 지금은 동등성이 동질성을 의미하지 않는다. 모든 이가 자신이 모든 것을 가졌음을 인식할 때, 온아들에 대한 개별적인 기여는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속죄가 완성되었을 때, 하느님의 모든 아들은 모든 재능을 공유할 것이다. 하느님은 편파적이지 않으시다. 하느님의 모든 아이들은 그분의 전적인 사랑을 받으며, 그분의 모든 선물은 모든 이에게 똑같이 거저 주어진다. “네가 어린아이처럼 되지 않는다면”이란 말은, 네가 하느님께 완전히 의존하고 있음을 충분히 인식하지 않는 한, 아들이 아버지와 진정한 관계에 있을 때 갖는 진정한 권능을 알 수 없다는 의미다.

89 평화를 원하는 너는 완전한 용서를 통해서만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전에는 네가 진정으로 평화를 원한 적이 없었으며, 따라서 평화를 얻는 법을 말해줘도 소용이 없었다. 평화를 배우기 원하고, 어떻게든 자신에게 평화가 필요하다고 믿지 않는 한, 어떤 배움도 얻을 수 없다. 하느님의 창조물에는 결핍이라는 개념이 없지만, 사람의 창조물들에는 그 개념이 아주 분명하다. 사실 이것은 핵심적인 차이다. 필요는 정의상 결핍을 함축한다. 필요는 네가 지금과 어떻게든 다른 상태에 있다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인식을 수반한다.

90 “분리”는 “타락”보다 더 나은 용어다. 분리가 일어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결핍되지 않았다. 이것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는 의미다. 그가 만약 자기 자신을 박탈하지 않았다면, 그는 결코 필요를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다. 분리 이후 필요는 사람에게 행동할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강력한 근원이 되었다. 근본적으로 모든 행위는 필요에 의해 동기가 부여되지만, 행위 자체는 신적인 속성이 아니다. 몸은 행위를 위한 장치다. 사람은 자신이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이런 장치를 갖고 있다.

91 각 사람은 스스로 확립한 특정한 필요의 위계에 따라 행동한다. 그의 위계는 결국 그가 자신을 무엇이라고 지각하는지, 즉 자신에게 무엇이 결핍되었다고 지각하는지에 달려있다. 하느님과 분리되었다는 느낌이야말로 사람이 실제로 교정할 필요가 있는 유일한 결핍이다. 사람이 진리에 대한 자신의 지각을 왜곡함으로써 자신을 결핍되었다고 지각하지 않았다면, 이런 분리의 느낌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종류든 필요의 위계라는 개념이 생겨난 이유는, 사람이 이런 근본적인 잘못을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서로 다른 필요들을 갖는 여러 수준들로 이미 조각내 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은 통합되어 가면서 하나가 되며, 그에 따라 그의 필요들도 하나가 된다.

92 통합된 필요는 통합된 행동을 낳는다. 그것은 양가감정이 없는 상태를 낳기 때문이다. 필요의 위계라는 개념은 사람이 하느님과 분리될 수 있다는 근원적인 잘못original error의 필연적인 귀결로서, 먼저 그 자체의 수준에서 교정이 된 다음에야 여러 수준들을 지각하는 잘못이 교정될 수 있다. 분리된 수준들에서 활동하는 한, 사람은 효과적으로 행동할 수 없다. 하지만 사람이 여러 수준들에서 활동하는 동안은, 교정은 아래에서 위로 도입되어야 한다. 그 이유는 사람이 지금 “위”나 “아래”와 같은 개념이 의미 있는 공간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공간은 시간만큼이나 의미가 없다. 공간이라는 개념은 실제로 시공간 믿음 중에 하나다.

93 물질 세상이 존재하는 이유는 단지, 사람이 자신의 불신을 교정하기 위해 세상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한 불신이야말로 사람이 애초에 물질 세상에 있게 된 이유였다. 사람은 결코 두려움의 결과를 스스로 통제할 수 없다. 바로 그가 두려움을 만들고는 자신이 만든 것이 존재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비록 내용 면에서는 그렇지 않더라도, 태도 면에서는 자신의 창조주를 닮았다. 창조주께서는 당신의 창조물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그들을 완벽하게 믿으신다. 창조물에 대한 믿음이 그것의 실존을 낳는다. 이런 이유로 사람은 다른 누구도 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고 믿을 수 있다. 그것이 그에게 참인 이유는, 그가 그것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94 두려움의 모든 양상은 위아래가 뒤집힌 지각에서 비롯된다. 보다 진실로 창조적인 자들은 지각적 왜곡을 교정하는 데 자신의 노력을 기울인다. 신경증 환자는 타협하는 데 노력을 기울인다. 정신증 환자는 자신의 잘못이 확실한 진리성을 가지고 있다고 입증함으로써 벗어나려고 애쓴다. 정신증 환자는 진리를 부정함에 있어 더 일관적이므로, 통상적인 방법으로 풀어주기가 제일 어렵다. 하지만 기적은 이런 구분을 전혀 하지 않는다. 기적이 잘못을 교정하는 이유는, 그것이 잘못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적에 대해 다음으로 기억해야 할 또 다른 요점은 다음과 같다:

95 52. 기적은 오지각의 정도를 전혀 구분하지 않는다. 기적은 잘못의 정도와 방향에 전혀 상관없이 효과적으로 지각을 교정하는 도구다. 이것이 바로 기적의 진정한 무차별성이다.

96 그리스도가 통제하는 기적은, 스스로 기적을 사용할 수 있는 이들에게 향한다는 의미에서만 선별적이다. 따라서 그들은 필연적으로 다른 이들에게 기적을 확장할 수밖에 없으며, 그 결과 속죄의 사슬이 강력하게 엮어진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통제는 기적 자체의 규모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크기라는 개념은 그 자체로 실제가 아닌 차원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기적은 실재에 대한 자각을 회복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만약 기적이 교정하려는 잘못을 지배하는 법칙에 기적 자체가 구속된다면, 기적은 쓸모가 없을 것이다. 사람만이 이런 종류의 실수를 한다. 이것은 사람 자신의 거짓된 믿음이 낳은 어리석은 일관성의 한 사례다.

97 부정의 진짜 의미를 이해하고 포기하려면, 사람이 가진 창조적 뜻의 권능과 힘을 먼저 이해해야 한다. 부정은 단순한 부인이 아니다. 부정은 적극적인 의미에서 그릇된 창조물이다. 이런 그릇된 창조물은 그것을 만든 자에 의해서는 어쩔 수 없이 믿어지겠지만, 진정한 창조의 수준에서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98 53. 기적은 사람이 만든 것을 보다 높은 수준의 창조물과 비교하여, 그것과 일치하는 것은 참으로서 받아들이고 불일치하는 것은 거짓으로서 거부한다. 두려움의 모든 양상들은 더 높은 창조적 수준에서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거짓이며, 따라서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의 지각은 그가 자신의 믿음을 이 검사법에 제출할 용의를 내는 정도만큼 교정된다.

99 참인 것에서 거짓인 것을 가려내기 위해, 기적은 다음과 같이 진행된다:

100 완벽한 사랑은 두려움을 물리친다.  

만약 두려움이 존재한다면,

완벽한 사랑은 없다.

그러나 오로지 완벽한 사랑만이 정말로 존재한다.

따라서 만약 두려움이 있다면,   

그것은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창조한다.

101 이것을 믿어라, 그러면 너는 반드시 자유로워질 것이다. 하느님만이 이러한 해법을 확립하실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믿음은 정녕 하느님의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