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두려움: 사랑의 결핍
72 너는 “두려움”이 너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고, 너의 통제 밖에 있는 어떤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내가 몇 차례 말했듯이, 오로지 건설적인 행위만이 너의 의지와 무관하게 일어나야 한다. 우리는 앞에서 그리스도의 통제는 중요하지 않은 모든 것을 떠맡을 수 있는 반면에, 그리스도의 안내는 네가 선택하기만 한다면 중요한 모든 것을 인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두려움은 그리스도에 의해 통제될 수 없지만, 너 자신에 의해서는 통제될 수 있다. 두려움은 내가 너의 중요하지 않은 것을 통제하는 것을 방해한다. 따라서 그 교정은 너의 뜻의 문제다. 두려움의 존재는 네가 중요하지 않은 것을 그에 마땅한 수준보다 더 높이 올려놓았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너는 중요하지 않은 것을 너의 뜻 아래로 가져왔지만, 그곳은 그것이 속한 곳이 아니다. 이것은 네가 중요하지 않은 것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서 수준 혼동은 아주 뚜렷하다.
73 내가 너 대신 두려움을 통제할 수 없는 이유는, 네가 낮은 수준의 실재에 적절한 내용을 마음 수준으로 올리려고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수준 혼동을 조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수준 혼동을 교정하겠다고 선택할 수 있다. 너는 너 자신의 미친 행동을 용인하지 않고,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을 늘어놓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런데 네가 왜 미친 생각을 하는 것은 용인해야 하는가? 여기에 네가 명확하게 보아야 할 혼동이 있다. 너는 너의 행동에 대해서는 책임이 있지만 너의 생각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믿는다. 그러나 사실 너는 너의 생각에 대해 책임이 있다. 너는 오로지 이 수준에서만 선택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74 너의 행동은 너의 생각에서 나온다. 너는 행동에 자율성을 “줌으로써” 너 자신을 진리와 분리할 수 없다. 너의 생각을 나의 안내 아래 두자마자, 행동은 자동적으로 나의 통제를 받게 된다. 네가 두려워할 때마다, 그것은 너의 마음으로 하여금 그릇되게 창조하도록 허락했거나, 내가 너의 마음을 안내하도록 허락하지 않았다는 확실한 표시다. 그릇된 생각의 결과를 통제하는 것이 치유를 낳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만약 네가 두려워하고 있다면, 너는 이미 잘못 뜻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네가 그른 생각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느끼는 이유다. 너는 너의 행동이 아닌 마음을 바꿔야 한다. 그리고 이것은 정녕 뜻의 문제다.
75 너는 마음 수준 외에는 안내가 필요 없다. 교정은 오로지 창조가 가능한 수준에만 속한다. 교정이라는 용어는 교정이 작용할 수 없는 증상 수준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없다. 두려움을 교정하는 것은 정녕 너의 책임이다. 두려움에서 해방해 달라고 청할 때, 너는 그것이 너의 책임이 아니라고 암시하는 것이다. 너는 그 대신 두려움을 야기한 상태에 대해 도와달라고 청해야 한다. 이런 상태는 항상 분리된 마음의 뜻하기를 수반한다. 이 수준에서 너는 과연 무언가를 할 수 있다. 너는 마음의 방황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며, 그럼으로써 마음의 그릇된 창조물들을 수동적으로 용납한다. 특정한 결과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근본적인 잘못이 중요하다. 교정은 언제나 똑같다. 무엇을 하려고 뜻을 세우기 전에, 너의 뜻이 나의 뜻과 일치하는지 물어라. 그렇다고 확신하는 한, 두려움은 없을 것이다.
76 두려움은 항상 행하려는 뜻이 네가 하는 행동과 갈등할 때마다 일어나는 긴장의 표시다. 이런 상황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일어난다:
77 첫째, 너는 동시에, 혹은 연속해서 서로 상반된 일을 하겠다고 뜻할 수 있다. 이것은 갈등하는 행동을 낳으며, 너는 그것을 견딜 수 없어 한다. 왜냐하면, 다른 무언가를 하기를 원하는 뜻의 일부가 분개하기 때문이다.
78 둘째, 너는 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전적으로 뜻하지는 않으면서 행동할 수 있다. 이것은 일관된 행동을 낳지만, 자아 안에 엄청난 긴장을 일으킨다.
79 두 경우 모두 뜻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으며, 그 결과 네가 뜻하지 않는 일을 하게 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이런 상황은 강제받는 느낌을 일으키며, 이것은 대개 분노를 낳는다. 그다음에는 분노가 마음을 점령하고, 그른 의미에서의 투사가 뒤따르기 십상이다. 우울이나 불안도 거의 확실히 온다.
80 두려움이 있을 때마다, 그것은 너의 마음을 정하지 않았기 때문임을 기억하라. 너의 뜻은 갈라져 있으며, 따라서 너의 행위는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다. 행위 수준에서의 교정은 위에서 묘사한 첫째 유형의 긴장에서 둘째 유형의 긴장으로 잘못을 바꿀 수는 있지만, 두려움을 없애지는 못할 것이다. 대단한 의식적인 노력 없이도 너의 뜻을 나의 안내 아래로 가져오는 그런 상태에 도달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이것은 네가 아직 믿을 만하게 개발하지 못한 습관 유형을 함축한다. 하느님은 네가 뜻하는 것 이상을 요구하실 수 없다. 행하는 힘은 행하고자 하는 너 자신의 갈라지지 않은 뜻에서 나온다. 하느님의 뜻은 곧 너 자신의 뜻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식하자마자, 너는 아무런 긴장 없이 하느님의 뜻을 행하게 된다.
81 이 가르침은 상당히 단순하지만, 특히 간과되기 쉽다. 따라서 나는 너에게 귀 기울일 것을 간곡히 권하면서, 이 가르침을 반복해 말할 것이다. 오로지 너의 마음만이 두려움을 낳을 수 있다. 마음은 자신이 뜻하는 것에 있어서 갈등할 때는 항상 두려움을 낳으며, 그러면 뜻과 행위가 불일치하게 되어 불가피한 긴장을 낳는다. 이것은 더 나은 행동을 통해서는 교정될 수 없지만, 더 높은 뜻하기를 통해서는 교정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