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후의 심판의 의미

106 최후의 심판The Last Judgment은 사람이 지각하기에 가장 위협적인 개념 가운데 하나다. 그 이유는 단지 사람이 최후의 심판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판단judgment은 하느님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니다. 사람이 판단을 만들어낸 이유는 단지 분리 때문이었다. 하지만 분리 이후에는, 전체 계획에 내장되어야 했던 많은 학습 도구 가운데 하나로서 판단이 어떤 역할을 갖게 되었다. 분리가 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났듯이, 최후의 심판도 그와 비슷하거나 심지어 더 긴 기간에 걸쳐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그 길이는 현재의 가속화가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달려있다.

107 우리는 기적이 시간 폐지가 아닌 시간 단축을 위한 도구라는 점에 자주 주목했었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기적적인 마음 상태에 속히 도달한다면, 이 단축 과정은 거의 측량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그 사람들이 보통 때보다 더 빨리 자기 자신을 두려움에서 풀어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른 마음들에게 평화를 가져다주려면, 그들이 먼저 갈등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이다.

108 일반적으로는 최후의 심판을 하느님이 진행하시는 절차라고 여긴다. 실제로 최후의 심판은 사람이 나의 도움을 받아 진행할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스스로 처벌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더라도, 최후의 심판은 처벌의 부과가 아닌 최후의 치유다. 처벌은 바른 마음 상태와 전적으로 대립되는 개념이다. 최후의 심판의 목적은 사람에게 바른 마음 상태를 회복해 주는 것이다.

109 최후의 심판은 일종의 바른 평가 과정이라고 불릴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지, 모든 사람이 마침내 무엇이 가치 있고 무엇이 가치 없는지 이해하게 될 것임을 의미할 뿐이다. 그런 후에야 사람의 선택 능력이 제 방향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구분을 하기 전에는 자유로운 뜻과 갇힌 뜻 사이에서 계속 오락가락할 수밖에 없다. 자유를 향한 첫 단계에는 반드시 참된 것에서 거짓된 것을 골라내는 과정이 수반되어야 한다. 이것은 오로지 건설적인 의미에서의 구분 과정으로서, 요한 계시록의 진정한 의미를 반영한다. 하느님이 당신의 창조물들을 바라보고 그것이 좋다는 것을 아셨듯이, 사람도 결국에는 자신의 창조물들을 바라보며 오로지 좋은 것만을 간직하기로 뜻할 것이다.

110 이 시점에서 뜻은 자신의 창조물들의 엄청난 가치로 인하여 그것들을 사랑스럽게 바라보기 시작할 수 있다. 마음은 기어코 자신의 그릇된 창조물들과 의절할 것이며, 그것들은 마음의 믿음 없이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최후의 심판”이라는 용어가 무서운 이유는 단지 그것이 하느님께 거짓되게 투사되었기 때문만이 아니라, “최후”를 죽음과 관련짓기 때문이다. 이야말로 위아래가 뒤집힌 지각의 현저한 사례다. 그 의미를 객관적으로 검토한다면, 사실 최후의 심판은 생명에 이르는 길임이 아주 명백하다.

111 두려움 속에 사는 자는 정말로 살아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내리는 최후의 심판은 그 자신을 향할 수 없다. 그는 그 자신의 창조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창조한 모든 것에 최후의 심판을 언제라도 의미 있게 적용하여, 오로지 좋은 것만 기억에 간직할 수 있다. 그의 바른 마음 상태는 이렇게 지시할 수밖에 없다. 시간의 목적은 다만 “그에게 시간을 주어서” 이런 판단을 해내도록 하는 것뿐이다. 최후의 심판은 사람이 자신의 창조물들에게 완벽한 판단을 내리는 것이다. 그가 간직하는 모든 것이 사랑스러울 때, 그에게 두려움이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 이것이 바로 속죄에서 그가 맡은 역할이다.